Text Box: TP portrait 5 지상생활과 영계

1 무형세계에서의 인간의 존재

 1) 인생 노정

  ① 인생 노정에 대한 기도문

 

사랑하는 아버님, 하늘이 수욕을 당하는 부끄러움이 있을까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싸워 나온 소자를 지켜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땅에 무엇이 좋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운행하시는 본연의 심정에 연결된 이상 귀한 기준이 없는 것을 생각할 , 자리를 무한히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사랑에 접하는 사람은 세상만사를 잊더라도 미련이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는 이상세계, 본향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3 생의 자유권한을 가질 있는 해방아로 출생할 그날을 오늘 지상세계에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건전해야만 지상에 태어난 그의 일생이 건전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생활이 건전해야만 하늘나라의 생활이 건전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과 땅이 협조하고, 만우주의 동적인 운세에 박자를 맞출 있는 자리에 서려면, 오늘의 세상이 상충적이요 악이 주관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된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 겠습니다. 저희 후손들은 저희들과 같은 자리에 세워져서는 절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49-308)

 

사랑하는 아버지, 지금까지 봄의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고하신 아버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할 , 저희들은 아버님께 무한히 고마워하고 무한히 반가워하면서 저희 생명과 사랑 전체를 몽땅 옮겨 드릴 있는 자신이 것을 탄식할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동화될 있는 인연을 갖추어 거기에 완전히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래야 비로소 봄을 맞이하여 꽃을 피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일생에서 어느 한때에 봄을 맞이한 적이 있었느냐고 물을 그렇다고 대답할 없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불쌍한 영이 되어서는 되겠습니다. 하나의 꽃이 피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름과 가을을 거쳐야 하듯이, 저희도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겠사옵니다.

하나의 생명이 투입되어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여름절기를 거치고 뿌리와 줄기와 가지 전체에서 생명요소를 흡수해야만, 완전한 생명력을 지니고 2 생을 출발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몸은 죽더라도 마음 가운데 새로운 세계에 다시 태어날 있는 생명의 기운이 부풀어 오를 있느냐 하는 문제를 스스로 살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고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더라도, 내적인 생명력은 환경의 침범을 받지 않고 꾸준히 발전의 노정을 가야만, 봄을 맞이하여 다시 뿌려질 있는, 2 생명의 모체인 씨가 되는 것임을 아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가 외적으로 모습은 처량하지만 무한한 생명력을 집약할 있는 모체요, 결실체로서 다시 무한한 세계에 심어질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외적인 모습이 비참해지면 비참해질수록 내적인 가치는 더욱 충실해지는 것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2-37)

 

아버님, 아버지를 모시고 겸손히 경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저나라에서 아버지와 인연을 맺을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저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당신의 음성을 들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몸을 찾을 있고, 아버지께서 하나를 찾기 위하여 배후에서 환난과 수고의 역사 과정을 거쳐온 것을 느껴 스스로 머리 숙일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4-280)

 

  ② 사람이 원하는 목적

 

하나님은 ()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체로, 아담을 하나님의 얼굴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영적인 초점이고, 아담은 본래 육적인 초점입니다. 초점이 90각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요, 사람이 원하는 목적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저나라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로 영원히 나타날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럴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자기 부모를 하나님같이 모시면, 누구나 천국 가게 되는 것입니다. (119- 109)

 

  ③ 태어난 이유

 

오늘날 세계는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태양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별도 둥글고, 입도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라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둥글둥글 돌면서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둥글게 있더라도 개별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연관성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태어났느냐? 대우주와 박자를 맞추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바다의 물결이 출렁거리면 마음도 출렁거리고, 바람이 기분 좋게 불면 마음도 기분 좋고, 꽃이 피어서 향기를 풍기면 마음도 향기를 풍길 있다는 것입니다. (104- 122)

 

사랑에서 태어나고, 사랑에서 자라 가지고,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게 때는 낳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사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죽는 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리에 동참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동참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이 꽂아 놓은 깃발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은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아버지를 봐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형제들을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103- 258)

 

  ④ 순간(하루) 일생 관계

 

여러분의 생활 전체가 영양소를 흡수할 있는 발판이 되지 않고는 생명체를 완성할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현상 세계에서 벌어집니다. 생명의 분기점은 기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순간에 있습니다.

순간을 무시하는 사람은 귀한 것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도 없고, 하나님의 왕좌와 왕관을 물려받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을 빛내기 위해서 여러분은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주의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주의해야 됩니다. 자기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용이 세계와 관계되는 현상으로 남는다는 신념으로 해결짓는 데에서만이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승리권, 천주적인 승리권도 순간에 결정됩니다. 순간을 빛낼 있는 무한한 가치를 느끼며 생활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인도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딸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생사의 분기점은 순간에 달렸습니다. (31-218)

 

오늘 우리들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먼저 뜻의 나라가 오기를 바라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자체가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일치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이면, 시간을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뜻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뜻을 계승할 있는 개인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종족적인 환경, 민족적인 환경을 이루어야 뜻의 나라와 관계맺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시간이면 시간을 어떻게 뜻과 더불어 관계맺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없습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과 예수님 가정까지 4 년의 역사가 내려오고 있지만, 그들이 실수하게 동기는 어느 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도 1년이나 10 혹은 몇십 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실수는 순간에 초래되었으며, 순간의 실수가 억천만세 이어져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있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역사시대에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되었고, 뜻을 따라가지 않은 수많은 민족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 제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 시간 똑딱 하는 순간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도 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없습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뜻을 알고 순간부터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순간이라도 시간 관계를 두고 비약이 있든가 구렁텅이가 생겨나면 영원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는데 금년에 가면 명년에 가고, 명년에 가면 내명년에 가고, 10대에 가면 20대에 가고, 20대에 가면 30대에 가고, 30대에 가면 40대에 가고, 40대에 가면 50대에 가고, 이렇게 해서는 됩니다. 일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일생 동안 뜻과 더불어 하나 있는, 하루의 생활도 가져 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았다면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가 좋다 하더라도, 하루의 승리기준을 갖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없으며, 일년의 승리기준을 갖지 못하면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악을 청산하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 아담의 순간적인 실수가 억천만세 한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이 부모의 한을 풀고 형제의 담벽을 무너뜨려 하나의 가정 기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복귀섭리의 대표로 세워졌던 아벨이 죽었던 것도 순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20 걸려 방주를 짓던 노아의 수고노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소원을 성취할 날이 왔으니 배에 오르라!' 하신 명령도 순간에 내려졌습니다. 명령에 동조한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심판권 내에 매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창성(昌盛)하여 만국을 덮고도 남으리라' 축복하셨는데, 축복의 명령도 똑딱 하는 순간에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낸 시간도 몇십 동안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하루라는 시간권이었습니다. 제물을 쪼개어 제사 드리는 시간은 시간 미만이었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모든 생사화복의 기원이 짜여져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이 두려워해야 것은 끝날에 찾아오는 심판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찾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뜻과 일치시키느냐, 어떻게 뜻과 더불어 교차로를 형성하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37-219)

 

  ⑤ 유아기와 3단계 질서

 

아담과 해와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떻게 지었을까? 흙으로 빚어서 지었다면 어떤 흙으로 지었을까? 어디서 출발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 생각할 없습니다. 아기로부터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아기를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에게도 유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장성기가 있었습니다. 이건 천리입니다. 다음에 완성기가 있었습니다.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느냐? 무형의 하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올 있는 아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225- 198)

 

  ⑥ 우리들의 인생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국가, 세계는 뜻에 부합되는 환경이 있지 못하기에 온갖 고충이 벌어지고 있고, 선악의 분기점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백이면 사람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환경과 투쟁하고 있고, 환경을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침에 계획한 하루의 일을 누구도 자신할 없는 것을 우리는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느끼게 됩니다. 더우기 환경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자신의 하루 생활을 승리로 결과짓기 위해서는 그것에 비례해서 결의와 추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날이 승리의 날이 없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더해져서 달이 되는 것이요, 달이 더해져서 일년이 됩니다.

달도 우리가 계획한 대로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달의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달의 환경에 갖추어진 복잡한 모든 사연들, 모든 여건들을 타파할 있는 추진력과 결의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어서는 달의 계획을 승리로 끝맺을 없습니다.

일년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삼백예순 날을 극복할 있는 투지력 혹은 추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1년을 승리로 장식할 없습니다. 이런 1년에 10년이 가해지고, 20 혹은 30년이 가해진 날들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31-30)

 

오늘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시간성을 벗어납니다. 인류 역사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그와 같은 시간권 내에서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달성해야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을 중심삼고 10, 20, 30, 70, 일생 동안 가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크면 클수록 내적으로 더욱 강하게 다짐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목적에 도달할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목적을 능가할 있는 내적인 결의를 계속하지 않는 목적을 달성할 없다는 것입니다. (31- 149)

 

  ⑦ 우리가 찾아가야 본향

 

여러분은 영계() 사실을 모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혜택을 입어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근본을 헤쳐 보니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천지원칙인 위하여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한 내용으로 형성된 세계가 이상천국입니다.

그곳이 우리 인간이 찾아가야 본향(本鄕)입니다. 오늘 우리는 타락한 인생으로서 본향에서 추방당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본향 땅을 향하여 돌아가야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간 자체로서는 돌아갈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돌아갈 있는 길을 역사과정에 설정하지 않을 없습니다.

그래서 민족의 문화 배경, 풍습 혹은 전통에 따라서 수많은 종교를 세워 수습해 나왔습니다. 그렇게 수습하기 위한 훈련장으로 세운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니 종교는 본향 땅으로 돌아갈 있는 자격자를 연마시키는 훈련장소입니다. 동서 사방의 문화 배경에 따라 높은 데로 전진할 있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세계로 이끌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본향의 곳으로 지도하여야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위하여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을 없습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해야 되겠기에 온유겸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뭇사람을 높이고 그들을 위하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유는 나라의 법도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78- 117)

 

  ⑧ 인생 최고의

 

인생의 길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생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생이 가야 최고의 종착점입니다. 길은 남자도 여자도 가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은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번이고 번이고 죽을 고비를 거쳐서라도, 죽어서라도 끊임없이 찾아가야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것이 인생의 최고 길입니다.

욕망의 끝이 어디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가운데에 귀한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됩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하나님은 계셔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의 것이 것이요, 것이 그의 것이 , 비로소 안팎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상하의 등급이 없는 이상의 본국(本國)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눕게 되면,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위해서 있지 않은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천상세계 천국은 사랑으로 충만된 곳입니다. (39-210)

 

  ⑨ 출생의 기준과 생애의 기준

 

   ´u 잘못된 출생의 기준

오늘날 세상 사람은 자기 자신이 고귀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박사라고 하더라도 자기 출생이 틀렸다는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사랑과 생명과 핏줄을 타고났다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사탄의 사랑에 의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탄의 사랑이 부모에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어머니의 생명, 아버지의 생명에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어, 피가 오늘 나에게 이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류의 결실체가 바로 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사탄혈통에 속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의 혈관을 타고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사탄은 자기의 이상적인 결실을 맺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남녀를 본연의 순수한 완성 인간으로 구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 사랑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 혈통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발이 잘못됐습니다. 출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원점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거짓부모로 시작했으니 돌아가서 참부모로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핏줄을 다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축복받을 혈통전환식을 합니다. 그걸 생명보다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하나의 예식이라고 해서 그저 일반 종교의식으로 생각해서는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입장에서 회생(回生)하는 주사약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독주사입니다.

우리 조상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습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다시 길을 없습니다. 절대 가는 것입니다. 타락 천지에 불륜한 사랑을 남김으로써 역사를 통해 얻은 대가가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개인, 가정?사회, 국가, 세계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216-109)

 

   ´v 생애(生涯) 기준

여기서 생애는 영원한 생애를 말합니다. 영계만 말하는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영원한 삶입니다.

''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절대적이고 주체적인 하나님의 대상이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참사랑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신 생명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상은 영원한 것인데, 이상의 중심이 바로 참사랑입니다. 사랑의 상대가 나입니다.

사랑의 속성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를 하나로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나 동참할 있고, 어디를 가든 따라갈 있습니다. 전재산을 상속받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상속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비참한 과정을 거쳐서 이것을 발견함으로써, 기반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없고, 숭엄하고 고귀합니다. 놀라운 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영원한 참사랑의 자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저세계는 제한된 지구성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한된 곳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없지만, 저세계는 차원이 높은 세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뛰어넘을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얻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영생체로 지음받았습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대상체인 나는 영원한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계에 가면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생애 기준으로 첫째가 선악의 기준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악의 기준이 첫째이고, 둘째가 본연의 출발점이고, 번째는 영생입니다. (216-107)

 

 2) 인간의 위격(位格)

 

  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었을까? 첫째는 하나님 자신이 부모의 입장에 서기 위함입니다. 부모는 영계에서도 무형입니다. 모형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양을 가진 인간의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모양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심이 없는 것입니다.

번째는 뭐냐 하면, 수직선은 점에 머무릅니다. 면적이 없습니다. 영계에서는 번식할 없다는 것입니다. 수직 차원에서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하여 360 구체(球體) 되어야 많은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번째는 사랑의 상대권의 영원성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상대되는 것은 아담과 해와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상대의 위치에 섬과 동시에 자녀들도 상대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상대위치를 영속적으로 보존시키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하나님을 삼촌이라고 부를까요, 할아버지라고 부를까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상대란 평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횡적으로 번식하여 사랑의 가치를 완성해야 합니다. 완성된 사랑의 가치는 하나입니다.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번째는 모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형태가 필요합니다. 부모로서의 모양이 필요합니다. 아담의 아버지와 같은 얼굴로 영적으로 형태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번째는 천국 국민의 생산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부부는 생산공장입니다. 생산공장이라면 대량생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소량생산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대량생산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산공장이 자동화되어 명확하게 대량생산하게 되면, 천국은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많은 아기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222-338)

 

  ② 인간은 영계와 육계의 매개체

 

본래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짓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평형적인 입장에서 통일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있고, 피조세계가 있고 가운데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중간적 입장에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접촉시킬 있는 매개체인 것입니다. (67-143)

 

  ③ 몸과 마음 그리고 영인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피조세계는 축이 있습니다. () 축이 있습니다. 보이는 축과 보이지 않는 ,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주체를 중심삼고 돌아가는데 주체 자신도 돌아갑니다. 몸과 마음이 주고받으면 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복귀의 길도 축을 고치지 않으면 됩니다. 축을 고쳐야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몸의 중심이 무엇이냐? 마음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은 마음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몸이 움직입니다. 마음이'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가야 되고, '서로 가라!' 하면 서로 가야 됩니다. 몸을 제멋대로 없습니다. (136-14)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고, 마음 위에 영이 있으며,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비록 작은 하나의 개체지만 전체의 역사를 대신한 존재요,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애의 인연을 찾아가는데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앞에 모시고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천륜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는 하늘이 때립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인간에게 양심대로 살되 물질적인 악의 조건에 걸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양심은 천륜을 100퍼센트 닮았느냐?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천국 관문 앞에 곡절의 문이 가로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심판의 관문입니다. 오늘날의 사조(思潮) 공포와 불안과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중심을 잡으려야 잡을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몸과 영인체로 지었는데, ()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4-268)

 

  ④ 완전작동과 공명

 

공명(共鳴)이란 진동할 주파수가 같음을 말합니다. 인간은 영원히 있는 우리의 내적 사람과 지상천국에 있는 외적 사람이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될 있어야 합니다. 공명할 때는 음파가 같아야 엮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돕니다. 도는 데는 그냥 도는 것이 아니라 핵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인체와 육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울리게 때는 영적 세포, 육적 세포가 완전히 작동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완전작동할 때는 천상천하, 지상천하가 보이는 것입니다. 완전 작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도 그렇잖습니까? 성능이 좋으면 100퍼센트 울려 퍼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힘으로 육신과 영인체가 일치되어 폭발할 있는 경지가 되면 천상세계, 지상세계, 하나님 없이 공명하게 되는 겁니다. (171-103)

 

인간을 보게 되면 마음과 ,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마음사람과 몸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를 합하면 사람이라고 있습니다. 갈라놓으면 사람인데, 이게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으로 만들었느냐?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적 사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영인체가 있고 육신이 있습니다. 영인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인체하고 육신이 언제 하나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것은 음차(音叉) 마찬가지입니다. 음차의 하나를 울리면 다른 쪽도 진동수가 같게 공명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나님 사랑의 작용이 우리의 마음에 오면 자동적으로 몸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100퍼센트 공명시키게 있는 권내로 몰아넣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도 아니요, 능력도 아니요, 힘도 아니요, 오직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눈이나 같은 육적 오관이 영적인 오관과 바라는 하나의 초점, 이상적 표준점이 뭐냐? 하나님의 힘도 아니고 지혜도 아닙니다. 사랑이 모든 것의 초점, 표준점입니다. (138-254)

 

 3) 인간 생명의 본질

 

  ① 영적인 것이 인간의 본질

 

어떤 하나의 핵심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도는 상대적인 존재가 반드시 있습니다. 양자(陽子) 중심하고 전자(電子) 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자와 같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양자와 같은 하나님 마음의 핵심과 관계를 맺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찾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약동하는 , 하나님의 사랑이 화동하는 것을 느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의 길을 거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찾아나가는 것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빛이 있는 내가 것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진리는 영원불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선악을 분별하면서 진리를 찾아가야 것인가? 자신을 중심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성서에서도 높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나라에 가면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남을 위하도록 되어 있는 것임을 더욱 실감하게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찌하여 자기만을 위하려는 마음으로 만사에 임하고 있는가? 이것은 모든 인간이 천륜을 배반한 천사, 다시 말하면 사탄과 혈통적인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137)

 

이제 우리는 영적인 밥을 먹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육적인 밥과 영적인 중에서 어떤 것이 맛있어야 되느냐? 내가 살아남고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서는 영적인 밥맛이 육적인 밥맛보다도 좋아야 합니다. 영적인 힘을 중심삼고 사는 생활의 맛이 육적인 힘을 갖고 사는 생활의 맛보다도 맛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31-211)

 

  ② 만물의 영장이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 있다는 것을 것입니다. 인간에겐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 중의 ()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자체만으로는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 가지고는 원인을 통할 없고, 원인을 점령할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에게 점령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하게 되면, () ()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말은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장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장이 아닙니다. 영장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영장이 있는 클럽에 가입할 있는 자격자는 적어도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소원을 이루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천국이 되느냐? 하나님의 천국이 아니라 사람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32-136)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생해야 됩니다. 악한 세상에서 80 정도 사는데, 개가 죽는 것이나 사람이 죽는 것이 다를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다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다릅니다. 만물의 영장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에? 늙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변할 있습니다. 순금도 변합니다. 풍화작용에 의해서 감소합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159-278)

 

만물의 영장이라 함은 무엇을 중심삼고 영장이라고 하느냐? 돈을 중심삼고, 지식을 중심삼고, 권력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210-309)

 

  ③ 속사람과 겉사람

 

인간 본연의 인연이 뭐냐?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권 내에서 서로 서로가 완성애로서 즐길 있고, 찬양과 존경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본연의 인연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늘의 인연과 땅의 인연이 몽땅 화합하여 하나로 조화되어 나타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고, 보이는 몸이 있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면,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속사람과 겉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이냐, 십년쯤 지나면 끝날 것이냐, 죽어도 끝날 것이냐?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고 목적을 가진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혼돈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법칙은 전후 좌우가 엇갈림이 없이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걸 , 사람은 본래 이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집어던지고 본연의 마음을 찾아야 됩니다. (44-194)

 

우리 인간의 육신과 영인체 중에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육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입니다. 육은 70, 80년의 시간권, 한계권 내에서 살다가 사라지고 말지만 영은 시간권을 초월하고 공간권까지 초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책임을 깨닫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본의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육신을 중심삼고 잘살더라도 결국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육신은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기준과 육적인 기준 중에 어느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냐? 우리가 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은 영을 위하여, 영은 육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입장에 매달려서는 됩니다.

여러분은 육을 구원했다는 입장에서 영육이 합한 실체를 갖추어 보다 보람있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20-326)

 

  ④ 지상생활의 목적은 영육 완성

 

뜻의 목적은 무엇이냐? 인간의 영육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과거는 영적이고 현재는 육적이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침범을 당했습니다. 현재의 입장이 사탄세계이니까 사탄세계를 이긴 육이 되어야 되고, 과거에 사탄세계를 이겼던 영적 기반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승리하면 영육을 가질 있는 기준이, 미래에 대한 축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73-96)

 

우리가 알아야 것은 영계가 주체가 아니고 육계가 주체라는 것입니다. 완성시키는 데는 영계가 주체가 아니고 육계가 주체입니다. 육계의 완성은 영계와 육계의 완성입니다. 그러니 육신 생활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91-178)

 

 4) 육신생활의 고귀성

 

  ① 육신생활은 영계생활을 위한 준비

 

하나님께서 만물과 인간을 지으시고 선하라고 하신 것은 서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을 쳐서 마음 앞에 굴복케 하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악에서 선으로 넘지 못하면 됩니다. 몸이 완전히 승리했다는 것은 사탄까지도 완전히 뿌리뽑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탄을 정복해야만 있습니다. 사탄을 이기는 것은 육신을 벗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땅에서 사고가 났으므로 고치는 것도 육신을 쓰고 땅에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일을 하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서 승리하여 하늘 편의 선한 입장에 서게 되면 영원히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65-294)

 

육신세계는 짧은 기간입니다. 길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자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먹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밥도 걸어가면서 먹고, 잠도 걸어가면서 자고, 노는 것도 걸어가면서 노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세계의 누구도 받지 못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80-226)

 

내가 비록 제한된 땅에서 80 정도 있는다고 해도 우리의 무대는 세계의 제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만물은 세계의 만물이요, 몸은 세계 인류의 몸이요, 마음은 세계 인류의 마음입니다. 그런 심정은 하나님과 하나돼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하나의 제단입니다. (75-166)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라는 것은 쉬운 준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두고 때에, 소년시대는 청년시대를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장년시대는 노년시대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고, 노년시대는 영계에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일생은 대우주의 인격을 갖추기 위해 하나의 훈련과정을 거치고 있는 수련기간입니다. 준비기간이라는 것입니다. (147-188)

 

우리들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습니다. 세상과 영계는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 우리가 가서 살아야 곳이 어디냐? 물론 우리는 육신생활을 하면서 땅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청춘시대를 지나고, 장년시대를 지나고, 노년시대를 거쳐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끝마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일생이라는 것이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 맞이해야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준비합니다. 때문에 일생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학생을 예로 들어 말하면, 학년에 학점을 따야 학교에서 제정한 학점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기준에 얼마만큼 도달하였느냐 하는 비준에 의해서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점에 미달하게 되면, 학교가 세운 가치기준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표준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측정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육신세계에서 사는 것은 마치 학교에서 정한 학점기준에 맞게 준비하는 기간과 같습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에 쌓아야 실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책임을 추구하는 어떤 기준 앞에 얼마만큼 일치되느냐 하는 기준치를 중심삼고 생애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140-121)

 

여러분은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소화해서는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소화하고, 나라와 종족과 가정과 상대를 위해서 소화한다, 하는 생각을 해야지, 나를 위해서 한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일생을 자기 중심삼고 살면 전부가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위해서 살게 되면 모든 것이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꾸 위하다 보면, 나는 진공상태로 되기 때문에 참이 찾아들어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자랑이 뭐냐? 첫째가 참사랑이고 둘째가 참부모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에만 있는 말입니다. 사전에도 없습니다. 셋째가 참자녀이고, 넷째가 참종족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4 목표입니다. (203-101)

 

  ② 육신생활의 귀중성

 

내가 해방받으면 하나님이 해방받습니다. 가정이 해방받으면 하늘나라의 가정이 그렇고, 지상이 그러면 하늘나라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것입니다. 이런 이중구조의 일체성으로 해명됩니다.

여러분은 육신을 기간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부활시킬 있고, 우주도 부활시킬 있고, 모든 천하를 통일시킬 있는 것은, 육신을 쓰고 있는 기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물을 합하더라도 육신세계와 바꿀 없습니다. 그러냐? 하나님과 우주를 합하더라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없습니다. 성경의 '우주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하는 말도 그래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91-191)

 

육신생활은 80 정도밖에 됩니다. 80 정도밖에 되는 짧은 생애노정에서 역사적으로 엉클어진 모든 선의 권을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짧은 육신생활에 인연맺어야 선한 권이 방대하다는 것을 아는 마음, 양심이 얼마나 재촉하겠습니까? 죽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본향 땅을 찾아야<